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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현경이 인터뷰 기사 2 (김명곤저자)

개념광대 김명곤, 그의 꿈과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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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에 설치된 행사를 알리는 배너

 


↑ 기부를 위해 설치된 <꿈꾸는 광대> 무인판매대

 

지난 17일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김명곤 前 문화관광부 장관이 독자와의 만남을 가졌다. 오마이뉴스와 인터파크도서가 함께 주최한 이번 만남은 최근 출간된 그의 자서전 <꿈꾸는 광대>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강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김명곤 저자의 지인들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이 회의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김명곤 저자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강연장 입구에서 참석한 독자들을 직접 반겨 주었다.



↑ 강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독자들

 

행사 시작에 앞서, 김명곤 저자는 “일반적으로 출판 기념회는 딱딱한 자리인 경우가 많다. 그런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직접 사회자를 초청했다”며 이 날 행사의 사회자를 소개했다. 사회자는 저자와 대학 연극반 시절 동기이자 현재 ‘윤재석의 쾌도난마’라는 시사칼럼으로 널리 알려진 언론인 윤재석이었다. “함께 연극반에서 활동했던 대학시절 이후, 가장 가까이에서 김명곤을 지켜보았다. 오늘 이 자리에서 김명곤이란 사람을 발가벗겨 보겠다”라는 그의 말과 함께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 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김명곤 저자



↑ 행사의 사회를 맡은 언론인 윤재석


이 날의 행사는 <꿈꾸는 광대>에 소개된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자가 김명곤 저자에게 질문을 건네고, 저자가 이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를 영화계에 데뷔시킨 영화 <별들의 고향>의 이장호 감독을 비롯한 저자의 여러 지인들이 참석해 그의 이야기들을 증언하기도 했다. 행사 중간중간 전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었던 사회자의 노래와 영화 <서편제>를 통해 널리 알려진 김명곤의 신명 나는 소리가 어우러져 즐겁고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는 진행되었다.

 


↑ 웃는 모습으로 질문을 경청하는 김명곤 저자

 

사회자의 첫 질문은 김명곤 저자가 책에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표현한 그의 대학생 시절에 대한 것이었다. “우연히 들어간 연극반에 빠져 연극에 미쳤던 대학생 김명곤은 또 우연히 판소리에 빠져들어 박초월 명장에게 판소리를 사사받게 된다. 득음했는가.” 사회자의 다소 엉뚱한 질문에 김명곤 저자는 허허 웃으며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부터 명창이 되겠다고 판소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서 득음은 못하였다(웃음). 연극에 미쳐있던 나는 전통예술을 연극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의 일부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것이었다”고 전한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박초월 명장을 처음 만났다.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곁에 있으면서 스승님이 대표하는 ‘옛 광대들’을 가까이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당시에 많이 느끼고 배웠던, 기생광대라는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던 스승님의 삶과 예술은 영화 <서편제>를 각색하는 과정에서도 크게 반영되었다.”

 

김명곤 저자는 본격적으로 ‘광대’로 살아가기 이전에 두 가지의 직업을 거쳤다. <뿌리깊은 나무> 잡지의 기자와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 “그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김명곤 저자는 “그 직업들은 모두 연극을 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김명곤 저자는 ‘연극병’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연극으로 먹고 사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느껴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로 취직했지만 1년 만에 사표를 냈고, 이후 배화여고 교사로 취직한 것은 ‘방학 때 연극을 하기 위해서’ 였다고. 김명곤 저자는 그 당시 배화여고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금의 아내와 만나게 된 사연 역시 들려주면서, 이 날 자리에 참석해 있던 아내를 위해 ‘사랑가’의 한 대목을 불러 참석한 독자들의 흥을 올리기도 했다.

 


↑ ‘사랑가’의 대목을 부르며 흥을 올리는 김명곤 저자



↑ ‘사랑가’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김명곤 저자의 부인

 

계속해서 사회자가 질문했다. “이전의 관선 국립극장장 제도가 폐지되고 2000년, 초대 민간 국립극장장에 김명곤 저자가 임명되면서 김명곤은 국립극장을 ‘개판’으로 만들어 놓았었다. 어떻게 ‘개판’으로 만들었는가.” 그는 “당시 ‘국립극장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라는 구호 아래 ‘개판’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김명곤 저자는 우선 대극장, 소극장이라는 딱딱한 이름을 공모전을 통해 50년 만에 ‘해오름 극장, 달오름 극장’이라는 예쁘고 친근한 이름으로 바꾸었고, 그 간단한 변화를 시작으로 하여 국민들에게 예술과 문화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한다.

 

이어 김명곤 저자는 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재임하게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술잔을 함께 기울이던 그는 “예술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지”라고 말하는 노 대통령에게 화가 나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하시겠다는 분이 이렇게 문화예술에 대해서 천박하십니까”하며 거침없는 말들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거 큰일났다’고 생각했는데, 2006년 뜻밖에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문화관광부 장관직을 제안 받았다고 한다. 김명곤 저자는 “노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대인배’셨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행사에 참석한 <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

 

사회자가 물었다. “사람들이 한 번 행정과 정치의 맛을 보면 자신들의 본업으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그래도 ‘혹시 김명곤은 제자리를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김명곤은 다시 광대로 돌아왔다. 다시 제자리를 찾은 요즘 ‘광대’로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김명곤 저자는 장관직에서 내려와 드라마 <대왕 세종>에 출연하고 있던 당시 그에 대해 쓴 한 기사를 읽었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기사의 제목이 ‘장관 껍데기 벗어 던지고 광대로 훨훨’이었는데, 내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공직에 나갔을 때는 넥타이 메고 그 자리에 맞는 일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를 벗어났을 때에는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당연하다. 교수하던 사람이 장관직을 하다 다시 교수를 하면 이상하게 안 보는 사람들이, 연극했던 사람이 장관하다 다시 연극하니까 이상하게 보더라. 내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무용극 하나를 연출했고, 지금은 올 4월 발표될 연극 <아버지>의 연출을 맡고 있다. <아버지>는 부산영상센터 개관 초청공연으로 그 첫 막을 올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배우로서든, 연출자로서든, 작가로서든 문화와 예술, 연극과 창작을 위한 일이라면 바닥에서부터 노력하려고 한다.”

 


↑ 저자의 말을 경청하는 독자들의 모습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독자들의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한 독자가 “’예술’이라는 것은 상당히 아리송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김명곤 씨는 ‘예술’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김명곤씨가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의 방향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김명곤 저자는 "광대라는 뜻을 넓을 광자 큰 대자, 뜻 그대로 넓고 큰 예술적 영혼으로 민중의 고통을 껴안고 그들의 영혼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해석한다"며, ‘광대’로 살아가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예술’의 방향임을 드러냈다.

 


↑ 저자에게 질문하는 독자들

 

끝으로 사회자는 김명곤 저자에게 저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소리 ‘이산저산’을 불러줄 것을 청했다. “벗님네들 서로 모아 앉아서 한잔 더 먹소들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세” 하며 저자가 뽑아내는 노랫말들이 오로지 예술을 향했던 ‘광대’ 김명곤의 꿈과 삶의 이야기로 채워졌던 이 날 행사의 마무리를 흥겹게 장식했다.

 


↑ 유쾌한 모습으로 사인회를 진행하는 김명곤 저자

 


↑ 인터파크도서 독자들에게 김명곤 저자가 보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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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사진 인터파크도서 북& 7기 이현경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명의 사람을 만나고, 만 잔의 술을 마셔라.' 앞이 컴컴하기만 했던 재수시절, 늦은 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꼭 실천하겠노라 다짐한 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책, 사람, 술. 이들과 함께 타인과 함께 고민하고 느끼며 나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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