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 준 일 - <정5품, 종5품>
이 글은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양과목 글쓰기 과제로 제출했던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국장 승진...”
비서실 연락 받고 급히 가보니 고윤환시장님의 첫 마디였다. “부인 류미숙 씨도 이번에 사무관 승진합니다.
집안에 경사가 났어요.”
은빛 색깔 둥그런 추가 덜렁거리는 벽시계는 오후 5시를 가리키고,
2019년 6월 30일이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었다. 지금의 행정 9급 공무원,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재수하다 경험 삼아 쳐 본 시험에 합격 하게 되었고 쭉 이 길을 가게 되었다. 운명이었다.
당시 내무과장이셨던,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학문 시장님이 “이 서기, 십 년 뒤 자네 모습을 생각하며 일을 하게, 십 년 뒤 자네 모습 말이야.” 대학 배지를 달고 방학 때 고향 내려온 친구들 모습에 나 자신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방황하고 있었는데 나무라시는 거 같아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 흘린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계속 공부도 하면서 다른 직원들보다 좀 더 노력하는 그런 세월을 보내왔었다. 그 결실을 본거 같아 뿌듯했다.
-문경시청 도자기 임용장 -
우리 문경시에서는 임용장을 도자기로 만들어 주고있다 -
아버지, 엄마생각이 먼저 났다. 동네 앞산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잠들어 계신. 살아계셨더라면 돼지 한 마리 잡으셨을 거다. 시장에서 막걸리 한 잔 척 걸치시고 갈지자로 읍내를 활보하시며 우리 아들이 시청에 이종필 인데 서기관 승진해서 국장한다고, 우리 며느리가 이번에 동장됐다고, 목청 좋은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고 계실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 했다.
심장병을 얻은 뒤에도 생(生)을 정리하실 때 까지 항상 주변을 정갈하게 하셨던 엄마셨다. 옷도 잘 만드시고 음식 맛이 좋아 시골마을 혼례 이바지 음식은 도맡아 하셨다. 배추걷이가 끝난 이맘때 쯤 애들이랑 우리가 시골집에 들어서면 엄마는 마당에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나무로 불을 지펴 기름칠을 한 다음 가루를 묻힌 배추를 올려놓으시고 전을 부쳐주시곤 하셨다.
지지직 소리를 내면 그 고소한 냄새가 온 동네에 퍼져 나가고 모두들 침 넘어 가는 소리, 어디서 그런 고소한 맛이 나는 걸까? 노오란 배추와 튀김가루, 식용유 뿐인데...“주위 사람들한테 욕먹는 일 하지마라” 엄마는 아마도 조용조용 그렇게 당부하셨을 것이다.
우리 부부가 같은 날 승진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공직에서는 5급부터 간부공무원으로 불리는데 같은 직장에서 부부가 같이 간부공무원으로 근무한 사례가 없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퇴직을 하거나 그만 둔 다음에 승진시켜 주는 방법으로, 부부가 같이 간부가 되면 가족끼리 다 해먹는다는 그런 인식이 강하게 있었다.
한마디로 이번에 유리천장을 처음 깬 것이다. 천성이 어지신 장모님은 크게 좋아라 하는 모습보다는 빙그레 웃으시며 당신 딸이 동사무소 동장됐다고 동네 할머니들한테 아이스크림 하나씩 돌리셨다. 지금은 장모님도 돌아가셨다.
2년이 흘렸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이제 공로연수 중에 있고 퇴직을 얼마 남겨놓고 있지 않다. 아내는 여전히 일선 동사무소에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노란색 민방위복은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 처음 승진했을 때 그 감동은 많이 사라졌지만 승진은 나나 집사람,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 직위가 올라갈수록 더해지는 것이 책임감, 아내는 주말에도 동 관내 경·조사 챙기기를 비롯해 소외계층 돌보기 등 잠시도 쉴 날이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앞에는 내가 흐르고 뒤로는 산이 포근하게 둘러싼,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는 말 그대로 배산임수 명당이군요. 3대에 덕을 쌓아야 이런 묏자리를 구할 수 있지요” 부모님 묘 터를 잡아주신 채홍갑 지관(地官)어르신이 그때 하신 말이다.
현대 사회 공무원들을 1급 공무원에서 9급 공무원으로 9단계로 차등을 두고 있는데 조선시대는 현대의 9등급과는 달리 정1품부터 종9품까지 18등급으로 구분하여 그 지위에 구분을 두었다.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부모님 덕이다. 정5품(서기관), 종5품(사무관). 그리워 한다는 것은 외로움 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부모님 산소에 다녀와야겠다. 금년 6월말이 정년, 아내는 5년 더 남았다.
찰나(札剌)다. 공직생활 40여년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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